2023년 9월! 역전다방의 새로운 주제는? 정전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며 6.25 전쟁의 판도를 바꾼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을 조망한다. 북한군의 기습남침 소식을 접한 미국 정부의 반응은? UN 집단안보를 가동하며 발빠른 대처에 나서는 과정과 UN 안보리 결의안 내용을 완벽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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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 6.25 전쟁
정전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며 6.25 전쟁의 판도를 바꾼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을 조망한다.
6.25 전쟁 전체 회차
44편UN의 깃발 아래, 최초로 통합군이 탄생한다! UN 안보리 결의안 84호가 통과되며 만들어진 유엔군 사령부 초대 유엔군사령관으로 당시 미군 현역 유일한 5성 장군! 미군 내 원톱! 맥아더 극동군사령관이 지명되는데... 전세를 역전시킬 새로운 카드가 필요하다! 그가 내세운 작전은 상륙작전을 시도할 지점으로 꺼내든 곳은 바로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인천상륙작전 시간과 장소를 속여라!" 인천으로의 상륙을 이미 예상하고 몇 차례 경고를 했다는 중국과 소련의 공산당 수뇌부. 심지어 일본에서 활동하던 스파이들로 인해 인천상륙작전의 계획 일부가 노출됐다??? 1/5000 확률의 상륙작전, 성공을 위해 그만큼 더욱 정교하고 치밀한 연막전술이 필요하다! 상륙작전 시기를 속이는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태평양전쟁 당시 "쇼미 더 머니~!"를 시전하며 세계 제일의 해군력을 갖췄던 미국 해군이지만 전후 대규모 군축의 칼바람 속에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7함대를 기반으로 해군력을 총동원한 끝에 240여 척 규모의 가 탄생하는데... 미 해군의 상륙작전 수송·기동 노하우가 집약된 5개의 편제는 과연 어떤 모습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1950년 인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개항 이후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였던 인천 제물포. 그리고 그 인천으로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뱃길, 비어수로. 좁고 물살이 센 이 수로의 이름이 비어수로(飛魚水路)가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되는 1950년 9월 15일 첫 밀물은 깜깜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인천 상륙에 성공한 후 서울로의 진격을 시작한 한미 해병대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인천으로 증원된 북한군의 전차 T-34 네이팜탄으로 무장한 F4U 콜세어 그리고 미군 신형 전차 M26 퍼싱과 맞닥뜨린 T-34의 운명은 과연? 인천 일대에서 맞부딪친 M26 vs T-34 전차전을 전격 분석한다. 인천을 장악한 후 한미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샤를의 무기고가 돌아왔습니다~!! 더욱 치열해질 서울탈환작전 을 앞두고 미리 확인해 보는 주력 총기! 유엔군과 국군이 사용한 반자동 소총 M1 개런드 와 M1 카빈. 그리고 북한이 사용한 소련제 소총 M1891/30 모신나강. 사격 방법부터 발사속도, 화력 차이까지 양군의 주력 소총을 비교 분석합니다. 또한 625전쟁 당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서울 서측방 공격이 개시되며 주공을 맡게 된 대한민국 해병대 북한군의 큰 저항 없이 104고지를 점령하고 연희대(現 연세대학교) 방향으로 진격하지만, 스미스능선 일대 엄청난 화기를 배치하고 참호선을 구축한 북한군의 저항에 공격은 안타깝게 실패한다. 미 해병 5연대 2대대가 투입되고 연희고지터널과 56고지까지 장악하지만 또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이제 북진이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으로 38선을 회복한 유엔군. 패주한 북한군을 추격 · 격멸하기 위한 38선 돌파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데.... 6·25전쟁 초기, 미국의 전쟁 수행 계획에도 포함됐던 38선 돌파와 한반도 통일 방안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논의 속에 미 국가안보회의 보고서 NSC 81/1이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북진작전 계획에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북한 지형과 교통망, 그리고 보급! 인천항이 열리면서 어마어마한 미군의 보급품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이를 관리할 인력뿐 아니라 실어 나를 수송 트럭조차 부족했던 상황. 공군기까지 투입해 보급품을 수송한 미군의 보급 클래스를 짚어보고 그런데도 현지 부대로의 수송이 어려웠던 이유를 확인해본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유엔군이 계획한 원산 상륙 D-day는 1950년 10월 15일 하지만 10군단의 임무 교대와 인천항으로의 이동이 지연되면서 계획은 차질이 생기고 그 사이 국군은 이미 원산 인근에 도착! 원산 공격 준비를 완료한다! 이미 국군이 원산에 도착한 상황에서 원산 상륙을 강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원산상륙작전에 대한 당시 미군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원산 앞바다에 깔린 기뢰에 발목 잡힌 원산 상륙. 크림전쟁을 시작으로 발전해 온 러시아 기뢰가 북한 원산 앞바다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원산 앞바다에 깔린 기뢰 종류와 부설 방법, 그리고 종류에 따른 기뢰 제거법까지! 밀리터리 사이언스 스쿨에서 확인해 본다. 드디어 북한의 심장 평양을 향해 진격하는 서북축선 주공인 미 1기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평양을 향한 레이스. 과연 그 승자는 누구일까? 최단 루트로 진격한 미 1기병사단. 연대끼리 경쟁하며 올라간 국군 1사단, 그리고 국군 7사단까지. 평양으로 향한 각 부대의 평양 입성기 공개! 북한군 소탕작전 후 평양을 완전히 점령한 한 · 미 육군. 하지만 이미 북한 수뇌부와 북한군 주력 부대는 평양을 빠져나간 후였는데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1950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등장한 중공군! 중국은 왜? 6·25전쟁에 참전한 걸까? 그동안 꼭꼭 숨겨져 있었던 중국의 참전 이유가 기밀문서들의 공개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소련의 참전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는 설과 북한과의 남다른 관계 때문이라는 설이 그동안 알려졌던 전통적인 관점. 하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한반도에 투입된 중공군의 지휘를 맡은 펑더화이. 당시 만주 전역을 책임지던 린뱌오가 아닌 펑더화이가 총사령원을 맡은 이유는 무엇일까? 군인으로서 경력이 탄탄했던 린뱌오가 인민지원군 총사령원 제의를 고사한 이유와 당시 중공군 수뇌부 분석을 통해 펑더화이가 총사령원에 인선된 배경을 알아본다. 또한 펑더화이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중공군 하면 떠오르는 인해전술! 왜 인해전술이란 말이 생긴 걸까? 당시 중공군의 작전 전략과 전술을 통해 알아보는 인해전술에 대한 오해와 새로운 진실들!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투입된 30만 중공군 그런데 중공군의 압록강 도하 모습이라고 알려진 사진이 실제로는 아니었다? 압록강 도하 사진에 얽힌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북진한계선 철폐 명령과 함께 운산에서 수풍으로 향한 국군 제1사단! 그런데 북진하던 중 갑자기 중공군의 공격을 받게 되고 이틀간의 공방전 끝에 결국 보급선이 차단되며 중공군 포위망에 갇히게 된다. 국군 1사단의 진격이 지연되자 평양에 있던 미 1기병사단까지 투입되는데…. 중공군의 공격을 마주한 국군 1사단과 미 1기병사단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은 중공군. 중공군 참전을 눈치챌 만한 징조는 전혀 없었을까? 운산전투 당시부터 붙잡히기 시작한 중공군 포로. 하지만 비교적 정확한 진술과 정보에도 불구하고 유엔군은 이를 신뢰하지 않았는데... 소규모 의용병 정도의 참전이라 판단한 유엔군. 이런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지피지기백전불태?! 중공군의 1차 공세 직후 미 8군사령부 작전참모부는 ‘중공군 전술 긴급분석’에 나서고... 중공군 66군 역시 운산전투에서 파악된 미군과 국군의 강점, 약점을 향후 작전 개념에 반영한다. 미군의 화력에 쫄아서(?) 중공군 7만이 도망쳤다고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불길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워커(미 8군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포인트 1. [6.25가 맺어준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그들의 막중한 임무! 중공군 38군의 퇴로를 차단하라! 그러나! 튀르키예 여단이 치른 군우리 전투는 지금까지 평가가 엇갈린다는데! 과연 튀르키예 여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밀담 포인트 2. [1950년 11월 28일 도쿄 긴급회의] 급박한 전황에 도쿄에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포인트 1. [장진호 전투 개전] 27일 밤, 영하 ℃까지 떨어진 한밤중에 공격을 자행하는 중공군! 12만이나 되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장진호 동안에 있었던 미 7사간 31연대 상황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미 7사단 31연대의 "한국인 카투사" 밀담 포인트 2. [장진호 전투, 수많은 영웅들의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포인트 1] K-혹한이 빚어낸 #장진호전투 무기 비사 - 혹한에 무용지물이 된 총기와 효자 무기들 - 미군이 노획한 중공군 무기를 사용했다?! - 중공군 참전~1951년 초반까지 주가 상승했던 #M16 하프트랙 대공장갑차 밀담포인트 2] #장진호 철수작전의 배경과 플랜 - 1950년 11월 29일 “미 10군단 전격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포인트 1. 미 해병 500인’의 선한 영향력 적진 한복판으로 날아들어 온 보충병 밀담 포인트2. 미 해병 1사단의 철수작전 후반부 #하갈우리 ⇨ 고토리 ⇨ #황초령 통로 ⇨ 함흥방어선 ⇨ 흥남 “하갈우리 철수 준비”를 마친 미 해병 1사단. 밀담 포인트 3. 끊어진 수문교를 복구하라! #수문교 를 세 차례나 폭파한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포인트 1] 확전이냐 포기냐... 워싱턴은 초비상! - 맥아더 사령관의 요청에 대응 방침을 정해야 하는 미국 정부. - 정확한 전황 파악을 위해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 급파. - 병력 증원은 물론 중국과의 전면전까지 제안하는 맥아더 사령관 밀담 포인트2] “핵무기 사용” 논란의 전모 - 트루먼 대통령의 한마디 "핵무기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포인트 1] 피란민을 구조하라! 기적의 항해가 시작되다 - 흥남으로 모여든 피란민 114,000명 - 아비규환?? 평온의 피란길 - SS 매러디스 빅토리호가 이뤄낸 '크리스마의 기적' - SS 매러디스 빅토리호에 14,500여 명이 승선한 비화부터 중국에서 맞이한 최후까지 못다 한 이야기 공개 밀담 포인트2] 샤를세환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포인트 1] 허망하게 별이 지다... 워커 사령관의 순직 - 1950년 12월 23일에 일어난 황망한 교통사고 - 워커 사령관을 기리며 되짚어보는 그의 공헌 밀담 포인트2] 신임 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 중장 급파! - 맥아더 사령관이 일찌감치 낙점해 둔 리지웨이 중장 - 맥아더 사령관과 리리웨이 중장의 인연 - 광폭의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1] 1‧4후퇴 - 오후 3시부터 한강의 다리를 통제하고 청야전술이 펼쳐졌던 1월 4일 상황 - 청야전술에 대한 미군 내 논란 - 약 200만 명이 또 다시 남쪽으로 향했던 피란길 이야기 밀담 2] 중공군의 전면 공세 중지 결정 - 1월 8일부로 전 병력 공세 중지를 명령하게 된 펑더화이 - 중공군이 직면한 한계 #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1_ 선더볼트작전 개시 - 위력수색과 더불어 화력으로 적을 섬멸하는 선더볼트작전 - 선더볼트작전에 투입된 미 1군단✗9군단 - 튀르키예여단이 활약한 115고지✗금양장리전투 밀담 2_ 같은 시기, 중동부전선 상황 - 중공군 동태 파악 후 홍천으로의 진격을 결정한 미 10군단 - 홍천을 포위 후 주력을 섬멸한다는 라운드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1. 지평리전투의 주역! 제23연대전투단 분석 밀담 2. 심 중령(진)의 미리 보는 지평리 전적지 답사 - 프리먼 대령이 저지대에 폭 1.6㎞의 원형방어진을 펼친 이유 분석 및 지평리 방어선에 배치된 병력 소개 밀담 3. 지평리 방어의 한 축! 프랑스대대 - 최정예로 엄선된 프랑스대대 병력 및 국군중대를 별도 편성하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1. 지평리 안으로 구원부대를 보내라!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 - 원형방어진 측면 차단을 명한 리지웨이 사령관 - 제23연대전투단과 연결작전을 위한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를 투입 - 현장에 답이 있다! 당시 크롬베즈 특임대의 기동로 곡수리 ↔ 지평리를 연결하는 도로에 나간 심 중령(진)의 “길 위의 전쟁사” 밀담2. 가장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1. 미 8군 지휘관 물갈이 - 공세 기질이 부족한 지휘관을 교체하는 리지웨이 사령관 - 1951년 3월 28일. 국군 1군단장 백선엽 장군이 발탁된 배경은? 밀담 2. “장기전을 위한 재정비 돌입” vs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한 미국” - 한껏 오만해진 환상이 산산조각나며 장기전을 준비하게 된 정황 - 1951년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1. 5차공세(춘계공세) 1단계를 준비하는 공산군 - 중공군 95만 + 북한군 35만 = 공산군 130만 집결 - 전투병력만 100만 이상인 공산군 병력 편성 - 소련제 무기로 포병화력 증강한 공산군 - 중공군 vs 미군 포병화력 비교 밀담 2. 샤를 세환의 클래식 무기고 : 공산군이 무장한 소련제 무기 4종 분석 -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1. 리지웨이 – 밴플리트 투톱 체제 - 밴플리트 8군사령관과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의 관계 -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전술관 일치! “강력한 불의 장막으로 적을 섬멸하라!” 밀담 2. 중공군의 내부 실상과 5차 공세 노림수 vs 미 8군 방어계획 - 새로 투입된 병단 지휘관들의 역량과 마인드도 문제였다? -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밀담 1. 사창리전투의 여파와 그로 인한 돌파구 봉쇄에 나선 가평전투 - 심호섭 중령(진)의 미리 보는 전적지 답사 : 6개 나라의 군대가 뭉친 가평전투 분석. - 영연방군 참전용사를 기리며 밀담 2. 4월 공세 서부전선 – 서울 북방전투 - 동부전선 전황 간단 정리 - 서울을 공략하기로 한 펑더화이 - 한편, 서울 사수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현리전투의 내막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부지방, 특히 강원도의 당시 지형을 알아야 한다. 첩첩산중에 길은 외통수. 5월 공격준비포격에 국군 7사단이 허망하게 무너지면서 후방의 퇴로가 차단된 국군 3군단. 유일한 보급로이자 철수로의 관문은? 당시에는 ‘오마치’라 불렸던 고개,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사창리전투의 치욕을 씻어내고자 절치부심한 국군 6사단! ‘결사(決死)’의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골든-노네임선의 용문산 일대 사수에 나서는데... 북한강-홍천강 합류점 일대의 전초진지부터 원형방어 진지를 구축했던 나산(보리산) 일대에 이르기까지- ‘결사의 전장’을 찾아간 심 중령(진)의 전적지 답사. 샤를 세환의 드라마틱한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1951년 봄-여름날의 비망록. 하나. 포위섬멸의 정점을 찍은 눈부신 승리, 파로호전투! 5월 공세의 주공을 맡았던 중공군 4개 군(군단)이 화천호에 몰린 내막은? 비망록 둘. 5월 공세에서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정전회담’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공산진영의 검은 속내를 파헤치는 한편, 전쟁 발발 1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1951년 여름. 중동부전선을 북쪽으로 올리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했던 요충지는 바로 펀치볼! 펀치볼이라는 독특한 분지가 만들어진 까닭은? 정전회담이 결렬되면서 확대된 1951년 하계작전. 펀치볼 일대를 확보하기 위해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군에서는 도솔산전투, 가칠봉전투 등 투혼과 집념의 승리가 이어지는데...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대한민국 공군의 비상(飛上)이 시작된다! “일면 전투-일면 건설”의 기치 아래 조직을 성장시켜 강릉기지를 거점으로 단독작전 수행 능력을 갖춘 우리 공군의 활약이 펼쳐지는데... 샤를 세환이 분석하는 1952년 1월 초, 승호리철교 차단작전 속으로!! 1952년 5월에는 리지웨이 사령관이 떠나고 클라크 사령관이 부임! 미국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1952년 10월의 전설이 된 백마고지전투 집중분석! 백마고지전투에서 맞붙게 된 숙적은 중공군 최정예 “만세군”이란 별칭을 얻은 38군이었다. 그동안 후방에서 막강한 전력으로 업그레이드한 후, 철원지구에 다시 투입된 38군이었지만... 국군 9사단 역시 예전의 9사단이 아니었다! 야전훈련소 FTC 훈련을 무려 2차례나 마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 최정예 38군을 격퇴한 국군 9사단의 승리 요인은? 뜨거운 국군의 의지를 뒷받침해 준 물량의 힘은- 역시나 화력! 그중에서도 항공폭탄의 위력이 돋보였던 까닭을 짚어본다. 한편, 정전회담이 결렬된 가운데 백마고지전투의 승기를 잡을 무렵 유엔군의 쇼다운작전이 개시된다. 철의 삼각지 동측 요충지 오성산의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첫 야외 로케이션으로 준비한 6?25전쟁의 제5막 편! 이 전쟁을 어디서 어떻게 끝낼 것이며 휴전 후, 전쟁 재발을 막을 방법과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단 4개의 정전회담 의제에 담겨 있었는데... 군대처럼 정전회담에도 지휘계통이 있다? 공산군 측 협상대표단은 중공군 최고의 스파이였던 “리커눙”을 막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권모술수로 단련된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그야말로 파란(波瀾)의 연속이었다. 이 전쟁을 언제 어디서 멈출 것인가? 정전협상의 핵심은 군사분계선 설정. 38선으로 복귀를 주장하는 공산군 측에 맞서, 현 접촉선에서 최소한 개성과 서해5도를 확보하려 했던 유엔군 측! 그러나 공산군 측 역시 서해 해상통제선을 제외시키는 등 오
회차 상세·다시보기 링크 →1952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6개월 넘게 중단된 정전협상 회담이 멈춘 사이, 치열했던 장외라운드 정세는? 꽉 막힌 정전협상의 판도를 바꾼 결정적 사건 - 스탈린 사망! 재개된 포로협상이 ‘불씨’를 안은 채 합의에 이르자 이승만 대통령이 꺼내든 초강수는?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승부수가 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아이젠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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